많은 분들이 삼국지 책을 읽지 않았어도 어느 정도 스토리와 유명한 등장인물 한두 명은 알고 계실 텐데 그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사람은 누구일까?
이번 시간에는 유비, 관우, 장비처럼 삼국지에 나오는 유명한 인물의 순위를 정리하고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짧게 알아보도록 하자.
1. 유비
정사에 기록된 유비의 외모를 보면 178cm 정도의 키를 가지고 있었으며 귀가 매우 크기 때문에 눈을 돌려서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마치 부처와 비슷했다고 하는데 당시 남자의 상징은 수염이었지만 유비는 수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청년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많다.
유비는 삼국지연의에서 매우 비중이 높은 인물로 최후의 승자는 되지 못했지만 왜 주인공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은 것일까?
유비는 황실의 후손이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관우와 장비를 만나, 작은 세력으로 시작해서 황제가 된 인물이다.
정사에 나오지 않지만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한고조 유방과 유비를 동일선상에 놓으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더욱 비중이 높다.
망국의 군주였던 유비는 임기응변과 재략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과 인덕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관우와 장비의 죽음, 형주에서 밀리고 이릉대전에서 큰 패배를 겪은 유비는 이질에 걸린 이후에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2. 조조
위나라의 추존 황제 조조는 삼국지연의에서 마치 악당처럼 나오지만 카리스마와 결단력을 갖추고 있는 인물로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 책을 보면 여러 군웅들의 외모를 묘사하는 내용이 많지만 조조에 대한 기록은 찾기 어려운데 키가 150cm 정도로 작고 볼품없었기 때문이다.
조조는 적군에게 잡혀도 목숨을 구걸하지 않으며 자신의 사람들을 잘 챙기고 돌봐주지만 눈 밖에 난 인물은 죽이는 잔혹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조조를 난세가 만들어낸 영웅, 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의 악행을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
이런 평가는 비정상적인 이기심으로부터 나온다고 볼 수 있으며, 자신에게 이득이 되면 적군도 포용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빼앗았다.
게다가 이상하게 유부녀를 좋아하고 엮이는 일이 많았는데 아들인 조비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관련 기록들이 많이 남아있다.
조조는 탁룡사에 있는 배나무를 옮겨 심다가 뿌리에 상처를 내고 이후에 두통과 함께 그가 죽인 혼령과 관우가 나오는 악몽을 꾸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3. 관우
유비 휘하에 있던 무장으로 많은 분들이 이름만 들어도 긴 수염을 하고 있는 남자가 청룡언월도를 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관우는 삼국지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초기 자세한 정보는 없지만 출사를 하기 이전에는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을 했다고 전해진다.
정사의 기록을 보면 관우의 외모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수염이 매우 아름답다고 말하는데 연의에서는 얼굴이 붉어서 대추 같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관우를 관공이라고 높여 부르며 신격화 시키는 경우도 많지만 사실 그는 전투에서 패배하고 적에게 항복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주군으로 모시는 유비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 그가 완벽한 영웅은 아니지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더 끌릴지도 모른다.
그는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너그러운 심성을 지녔으며 패배했지만 포기하지 않는 모습으로 지금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관우는 손권과의 싸움에서 패배, 도주하려 하였지만 잡혀서 참수 당했으며 그의 시신은 조조에게 보내져 제후의 예로 장사 지냈다고 전해진다.
4. 제갈량
유비가 삼고초려를 통해서 얻은 인물로 전략과 내정을 담당하였으며 높은 충성심으로 죽은 이후에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진수의 제갈량전을 포함 그의 모습에 대한 기록을 보면 키가 184cm 정도로 컸으며 마치 신선과 같은 모습으로 용모가 빼어났다고 묘사된다.
제갈량이 지금까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이유는 한 명의 군주만 섬기는 충심과 뛰어난 두뇌로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력을 발전시키지 못하거나 군사적인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 그 역시 천하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많은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그래서 현대 사학자들은 제갈량을 정치적, 군사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지나치게 고평가 돼있는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제갈량의 일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출사표인데 촉한의 재상으로 위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황제 유선에게 보낸 표문을 출사표라고 말한다.
그는 5차 벌을 하던 중 오장원에서 54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는데 당시 피를 토하며 죽었다는 내용을 보면 심하통(위장병), 결핵이 의심된다.
5. 화타
신의라고 불릴 정도로 과거 뛰어난 의술을 보여줬던 화타는 동시대에 함께 살았던 장중경, 동봉과 함께 건안삼신의라고 불렸다.
그의 유명세가 어느 정도냐면 아무런 연관이 없는 설화에서도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삼국지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익숙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정사 기록, <화타전>을 보면 그는 서주에서 유명한 인사였는데 전업 의원이 아니라 경전에 통달한 유생이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당시에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이라고 하면 약을 처방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화타는 환자를 마취해서 외가적인 수술을 통해 원인을 제거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독화살에 맞은 관우가 수술을 받으면서 태연한 얼굴로 있었다는 내용인데 다른 사람이 치료했지만 연의에서 각색된 내용이다.
208년 무렵에는 조조가 심한 두통으로 화타에게 치료를 요청했는데 그는 아내의 병환을 핑계로 제대로 치료해 주지 않았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를 괘씸하게 생각한 조조는 화타의 거짓말을 간파하고 즉시 하옥시켰으며 화타는 옥중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6. 장비
젊은 시절부터 유비를 섬겼던 장비는 관우와 함께 만인지적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무력을 자랑했지만 아랫사람에게 무례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장비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있는 게 없는데 민간전승에 따르면 장비는 사대부 집안에서 자랐으며 문무를 겸비하고 서화도 잘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닌 구전이기 때문에 믿기 어려운 부분으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장판 전투에서 적을 막았던 내용이다.
장비는 도망가는 조조를 피해서 달아나는 유비를 지키기 위해 20명의 병사를 이끌고 장판파에서 적에게 생사를 가름하자고 외쳤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의 내용은 남아있지 않지만 연의를 통해서 5천 명의 기병을 두렵게 만들어서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로 발전하게 된다.
참고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장비는 술을 좋아하는 무식한 주정뱅이의 모습이지만 정사에 따르면 술을 잘 마시지 않고 머리를 쓰는 일도 많았다.
다만 병사들에게 행했던 가혹행위와 형벌 때문에 유비에게 질책을 받는 일이 많았고 그로 인해 부하였던 범강과 장달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다.
7. 여포
기마술과 마상 사격이 뛰어나서 비장으로 불렸던 여포는 정사의 기록에 따르면 키가 작고 호리호리한 체격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여포라고 하면 큰 덩치에 방천화극을 휘두르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중국 민간에서는 여포를 키가 작고 호리호리한 모습으로 그린다.
우리는 여포 하면 패륜적인 모습과 초선에 대한 애정 어린 모습을 떠올리는데 초선은 소설 연의에서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이기 때문에 참고하자.
여포는 정원을 죽이고 동탁의 신임을 받아서 부자 사이가 되기로 맹세했지만 나중에는 동탁을 죽이는 패륜적이고 배신을 일삼는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분들이 여포의 무력 순위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는데 기록에 따르면 최강자는 아니고 관우, 장비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인다.
이렇게 높은 무력을 자랑하던 여포는 조조에게 포로로 잡히게 되었는데 유비가 여포는 자신이 섬기던 정원과 동탁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한다.
여포열전의 내용에 따르면 이 말을 들었던 여포는 귀가 큰 놈이 가장 믿지 못할 놈이라고 말하였으며 이후 여포는 교수형에 처해지게 된다.
8. 조운
상산 조자룡으로 많이 알고 있는 조운은 온화하지만 강직한 성격을 지녔으며 공과 사를 구분하여 누구에게나 공정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청렴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신격화되지는 않았지만 친숙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조운의 외모에 대한 기록을 보면 키가 190cm 정도로 눈이 부리부리하고 위풍당당했으며 몸은 유비가 마치 돌덩어리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조운의 인지도가 높아진 이유는 조조에게 추격당해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도망친 유비를 대신해 유선과 감부인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 배송지가 쓴 조운별전을 통해서 그의 공적을 추가하고 자이통감에서도 이를 긍정하고 있기 때문에 뛰어난 장수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 현대에 장수들을 재평가하면 매번 인기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드라마나 게임에서 멋진 모습으로 등장하는 일들이 많다.
조운은 제갈량의 1차 북벌이 끝난 다음 노화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으며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모두 성품에 대한 칭찬을 했다고 전해진다.
9. 손권
오나라의 군주 손권은 반세기 정도를 지도자로 있었지만 비중이 낮고 말년의 실책 등으로 인지도가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다.
적벽가에서 손권의 외모를 묘사한 내용을 보면 눈이 푸르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서양인이 아니라 잡티 없이 맑은 흰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네모난 얼굴에 이마가 넓었던 그는 일반적인 외모는 아니었으며 상체는 길지만 하체는 짧았기 때문에 미남으로 불린 형 손책과는 대비적이다.
손권은 70세 가까운 나이까지 살면서 많은 행적을 남겼기 때문에 사람마다 그를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이다.
그는 군사적으로 공격적인 전략에는 약했지만 방어에는 강점을 가졌고 적에게 항복하는 척하다가 기습하는 사항계를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도 손권이 오나라의 군주로 있으면서 수많은 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그렇게 무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무예, 궁술이 매우 뛰어났다.
천하통일을 앞둔 252년 사망한 손권은 말년에 후계자 선정으로 문제가 많았는데 이궁지쟁을 정리한 문서를 보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10. 초선
정사에는 없지만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 초선은 많은 분들이 삼국지의 히로인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완전히 창작된 인물은 아니며 여포와 밀통을 했던 동탁의 시녀가 초선관을 관리했기 때문에 이를 모티브로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초선은 삼국지연의 이전에도 등장했으며 처음에는 여포의 아내로 나왔지만 나중에는 여포가 사랑한 여자로 나오며 비중이 높아진다.
초선은 왕윤이 동탁을 죽이려고 한숨을 쉬자 자신이 여포와 동탁 사이를 이간질해서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을 유발한 초선은 여포가 동탁을 기습해서 목숨을 빼앗게 만들고 이후 여포가 죽자 허창으로 이동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초선은 동탁의 죽음을 더욱 드라마틱 하게 만들기 위한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에 이후 별다른 행적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무래도 동탁, 여포가 한눈에 반했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초선의 외모는 매우 뛰어난 것으로 설정되며 다양한 게임, 드라마, 영화에도 나온다.